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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사색/책 분석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리뷰; 현대 사회 속 우리의 또 다른 이름, 바틀비

by 다루(DARU) 2020. 11. 21.

 

 

 

 

필경사 바틀비 _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_ 문학동네

 

카테고리: 소설

손바닥 두 개를 나란히 둔 것보다 조금 큰 크기, 108p에 정가 11000 원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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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 / 10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언급되어 읽게 된 책. 언젠가 읽고 싶었던 「모비딕」작가의 책이었다니! (단순히 굿즈들이 예뻐서 생긴 호기심)

초반에 조금 지루한 듯하나 바틀비의 행실에 호기심이 생기며 끝까지 읽게 됨.

하지만 바틀비에 대한 정보는 극히 소량으로 그것조차 그 행실에 대한 깔끔한 규명을 해 주진 못함. 카프카가 연상되는 이유가 이것인 듯.

(카프카의 「소송」에서는 주인공 K가 의문의 소송에 휘말린 이유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주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미국 자본주의(규율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사회구조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한 인간 개개인에 대한 병리학적 접근

대상에 대한 인간의 동정심과 자기만족 사이의 묘사

 

 

후기:

(아래 작성되는 규율사회와 성과사회, 부정의 힘에 대해서는 「피로사회」 리뷰 때 알아보자.)

 

이 작품은 실제 금융권으로 유명한 장소인 '미국 맨해튼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실제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하게 한다. 묘사되는 분위기는 음울하고 음침하기 짝이 없으며, 작품 속 노동자들은 모두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신경성 질환들을 안고 있다. 작품 속 사회(규율사회)는 후기근대(현재; 성과사회)와는 다르지만, 규율주의와 성과주의의 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한국사회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용주에게 '하기 싫다'고 당당히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그 점에 있어서 독자들은 바틀비가 고용주의 명령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p.80

"아뇨.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포목상의 점원이 되는 것은 어때?"

"그 일을 하면 너무 많이 갇혀 있게 돼요. 아뇨, 저는 점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하지 않아요."

나는 소리쳤다. "너무 많이 갇혀 있다니, 아니, 자네는 늘 스스로 갇혀 살지 않았나!"

"점원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의 대꾸는 단번에 그 하찮은 일들을 일소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하기 싫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반항이라기엔 약하고 영 낯선 이상한 표현이다. 역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어떤 행위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역자는 조르조 아감벤의 해석을 차용하며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행위가 선택할 권리의 주장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바틀비에게 어떤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한병철은 그와 반대로 바틀비를 절대적 부정적 존재로 인식한다.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통해 바틀비의 삶은 닫혀만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 무위를 위해 상관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의욕 상실, 무감각, 피로함만이 바틀비를 이루고, 주위 인물들 역시 '택한다'는 바틀비의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바틀비의 증상이 전염되어 사회를 이룰 것을 알 수 있다. 언어와 정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갇혀 살고 있으면서, 갇혀 살기 거부하는 바틀비. 본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바틀비의 말은 우리 모두가 바틀비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지 않겠다"라고 판단하고, 타인에게 그 의사를 내비치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성에 파묻혀 살고 있는 우리에겐 부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부정하기만 하며 (애초에 존재했는지도 의문인) 자신의 세계를 잃어가는 바틀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올바른 부정'을 배워야 한다.

 

p.50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덕분에 바틀비를 병리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작품을 읽으며 눈에 띄었던 것은 바틀비의 고용주이며 작품 화자인 변호사의 심리 묘사였다. 변호사는 본인의 평화스럽고 안정된 삶을 추구함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지는 피하고 있다. 바틀비를 대하는 태도에서 쉽게 알 수 있고, 책의 문체(=화자의 말투)에서도 나타난다 (ex: 나는 고 존 제이컵 애스터의 호의적인 평가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규율사회의 고용주답게 직원들을 '쓸모'로 판단하지만,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고, 직원 개개인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등 직원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그가 바틀비라는 비상식적인 인물과 부딪치며 겪는 혼란이란! 바틀비를 향한 동정심과 개인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변호사 속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지만 결국 바틀비를 버리게 되며 매우 평범한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동정심으로 인한 선행 또한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니체의 말에 따르면 이타심 또한 개인의 만족을 위한 마음이 아닌가.) 내가 고용주였다면 바틀비를 어떻게 대했을지, 변호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는 그대로, 고용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닌가? 작가는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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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과 더불어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허먼 멜빌. 그러나 생전에는 데뷔 초기의 몇 년을 제외하면 대표작 <모비 딕>조차 초판 삼천 부도 채 못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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